795일차 - 다시 찾은 오브닌스크

체크아웃을 하면서 숙소 주인에게 말했다.

“외국인 거주 등록증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지금 사정이 생겨서 등록증을 발급해 줄수는 없어요.”
“오늘 모스크바에 들어갈 건데, 혹시 도로에서 경찰이 물어보면 어떻게 하나요?”
“아 그렇다면, 내가 영수증을 써 줄게요. 이걸 보여주면 될거에요”

자필로 적은 영수증을 건넸다.

“이걸 보여주면 되는 거죠?”
“네”

숙소를 나와 라이딩을 시작했다. 날씨를 보니, 오늘은 비소식이 없다. 다행이다.
모스크바에 30여 킬로미터 남겨둔 지점부터 2차선 도로는 중앙 분리대가 있는 3차선도로로 바뀌었다. 그리고 널찍한 갓길도 생겼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모스크바로 들어오면서 차량들이 몰려들고 극심한 교통체증이 시작되었다. 차량들은 조금이라도 빨리가기위해 내가 달리는 갓길로도 치고 들어왔다. 현재 교통상황을 알 수 있는 구글맵을 보니, 온통 빨간색이다.
대도시에 들어오면 워낙에 인터체인지도 많고 차량도 많아 차선을 바꾸는 것도 여의치 않다. 예약한 숙소 까지 대략 10여 킬로미터. 구글맵에서 도보로 검색해보니, 차량으로 가는 루트보다 훨씬 짧다.

차라리 도로로 가는 것보다 인도에서 끌바하는 편이 더 낫겠다. 자전거를 인도로 끌어 올렸다.
그렇게 숙소에 닿을 수 있었다. 예약된 메일을 보여주며 체크인을 하려는데, 주인이 외국인 거주 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브리얀스크와 어제 묵은 오브닌스크에서 받은 영수증을 건넸다. 여주인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손님으로 보이는 남성이 영어를 했는데, 그가 나에게 말하길.

“체크인 하는데 문제가 있어. 오브닌스크에서 받은 영수증으로는 안되고 주거등록증이 필요해”
“내가 오늘 체크아웃을 할 때, 주인에게 주거등록증을 달라고 했는데, 그의 말로는 사정이 있어 발급해줄 수 없고, 대신 영수증을 줬어.”

그가 여주인과 다시 얘기를 하더니, 이걸로는 체크인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 내가 숙소에 전화할 테니, 숙소 주인과 통화해봐”

어제 묵은 숙소 주인과 여주인 그리고 남성이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했다. 십여분을 통화하더니, 그가 다시 말했다.

“아까 말했지만 영수증으로는 여기 머물 수 없고, 방법은 네가 직접 오브닌스크에 가서 외국인 거주 등록증을 받아오는거야”

어이가 없었다.

“오브닌스크는 모스크바가 아닌 대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당일 등록을 할 필요가 없어.”
“축구경기가 열리는 기간에는 러시아 전 지역에서 당일 등록을 해야 해, 너는 이미 러시아 법을 어겼다고”

“그럼 메일이나 사진 파일로 그쪽에서 여기로 보내주는 방법은 어때?”
“그건 안되고, 직접 작성한 종이어야만 해”

나는 오늘 모스크바에 왔고, 당일 체크인을 하려는데, 왜 어제 숙소가 문제가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와 얘기해봐야 문제가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근무시간 후라, 당직하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그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1. 다른 나라를 나갔다가 들어오는 방법
  2. 오브닌스크에게 가서 거주 등록증을 받아오는 방법
  3. 근처 다른 숙박업소를 찾는 방법

3번째 방법의 경우, 운이 좋으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찾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운좋게 경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도, 이후 다른 도시에서 숙박 시에 같은 이유로 체크인이 거부될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실 상 3번은 제외.
1번 또한 제외.

결국 2번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내가 답답했던 부분은 이랬다.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관련 사항을 체크도 했고, 대사관에 아래와 같이 직접 메일을 보냈고,

안녕하세요.
 
러시아 자전거 여행을 계획 중인 여행자입니다. 대사관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인 등록제도에 대해 알게되었고, 이와 관련하여 궁금한 사항이 있어 메일을 드립니다.
 
아래는 대사관 홈페이지에 나온 거주 등록 대상과 신청 기한에 대한 내용입니다.
 
------------------------------------
1. 러시아 입국일로부터 7일(근무일기준)을 초과하여 체류하고자 하는 외국인은, 위 기간 내에 거주등록을 해야 함 (제4장제20조제2항제1.2호)
 
2. 이미 거주등록을 한 사람도 거주지를 이동할 경우(출장, 여행 등) 7일 이내 새로운 거주등록을 해야 함
------------------------------------
 
저는 대략 두달(60일) 간 자전거 여행을 할 계획이라서 1번 항목에 따라 입국 후 7일 내에 거주 등록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문의할 내용은 2번 항목인데요. 저는 거의 매일 자전거로 거주지를 이동을 할 계획이라, 거주등록을 7일 이내에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행 기간 동안, 최소 7일에 한번씩 거주 등록을 해야 하는 건가요?
 
만일 그렇다면, 추가로 문의를 드립니다.
 
거주 등록을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체크인과 동시에 거주등록신고 대행이 이뤄지는 숙박시설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도시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숙박시설이 많아 문제가 없지만, 시골이나 외곽지역에는 숙박시설 자체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거주등록신고 대행이 이뤄지는 숙박시설이 없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제가 스스로 이민청 또는 우체국에 직접 거주 등록을 할 수 있는지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후 아래와 같이 답장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첨부파일을 확인해 보시면, 2017 컨페더레이션스컵 기간 (2017.06.01~07.12)과 2018년 월드컵 기간 (2018.05.25~07.25) 중 특정 도시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도착일로부터 1일 이내 (근무일 기준 아님) 거주등록신고를 반드시 하여야 합니다.
 
거주등록신고를 숙박시설을 통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할 경우 이민청 관할 지역기관에 가셔서 신고하셔야 합니다. (우체국, 복합민원센터 및 인터넷을 통한 거주등록 신고 접수는 받지 않음)
 
감사합니다.
 
주러한국대사관 드림.
 
<첨부파일>
 
5.10(수), ‘2018 FIFA 월드컵 및 2017 컨페더레이션스컵 개최 기간의 보안 강화
 
대책에 관한’ 러시아연방 대통령령이 공포.발효되었습니다.
 
ᄋ 주요 내용은, 외국인이
 
- 2017년 컨페더레이션스컵 기간(2017.6.1.~7.12.) 중 카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
 
부르크, 소치를 방문하거나,
 
- 2018년 월드컵 기간(2018.5.25.~7.25.) 중 볼고그라드, 예카테린부르크, 카잔,
 
칼리닌그라드, 모스크바, 니즈니노브고라드, 로스토프나도누, 사마라, 상트
 
페테르부르크, 사란스크, 소치를 방문할 경우,
 
- 해당 도시 도착일로부터 ‘1일 이내(24시간 이내, 근무일 기준이 아님을 유의하시기 바람)’
 
거주등록신고를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ᄋ 러 내무부 이민총국 확인 결과, 상기 기간 동안은 경기가 개최되는 도시 내
 
내무부 지역기관*(территориальный орган Министерства внутренних
 
дел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에서 주말 및 공휴일 휴무없이 거주등록 신고
 
접수 업무를 처리하며,
 
- 우체국, 복합민원센터(многофункциональный центр, мфц) 및 인터넷
 
(www.gosuslugi.ru)을 통해서는 거주등록 신고 접수를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 모스크바 및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행정구역별 내무부 지역기관(주소, 전화번호)은 지역
 
이민국 홈페이지(모스크바 : https://77.mvd.ru/ms, 상트페테르부르크 : https://78.mvd.ru/ms,
 
아래 그림 참조)에서 확인 가능
 
ᄋ 이로 인해 동 기간 중에는 거주등록 수요 증가로 인한 민원혼잡, 장시간 대기 등
 
불편 및 기간 계산 착오에 따른 법위반 사례 발생이 예상되니,
 
- 해당 도시를 방문하는 재외국민께서는 가능한 한, 체크인과 동시에 거주등록
 
신고 대행이 이뤄지는 숙박시설을 이용하시는 것이 불편을 최소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ᄋ 추가 문의사항이 있는 경우에는 영사과(komo2727@mofa.go.kr, +7(495)783-2747)로
 
연락주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위 내용을 보면, 축구경기가 열리는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의 경우에만 당일 거주지 등록을 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이외 다른 지역은 7일.

모스크바에 도착한 당일 체크인을 하는데 왜 해당도시가 아닌 오브닌스크에서의 거주등록증이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정식 거주 등록증을 받은 브리얀스크로부터도 5일이 지나지 않은 상황인데도 말이다.

대사관 직원에게 물으니, 위에 언급된 도시 말고도 해당되는 도시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건 뭐지'

답답했지만, 대사관 측에서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지금 현재로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오브닌스크에 다시 가는 것'.

이때 시간이 대략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에는 너무 늦었고 피곤했다.
사람들에게 오브닌스크에 가는 방법을 물었다.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는 방법을 알려줬다.

자전거를 숙소 근처에 세워두고, 중요한 물품들만 추려 근처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하~아. 러시아 여행 정말 힘들구나…”

시간이 늦어 기차가 없을까봐 마음이 급했다. 난생처음 모스크바 지하철을 타는 초행길이라 쉽지 않았다.
물어물어 키옙스키 역(Киевский вокзал)에 도착했다. 오브닌스크로 가는 기차표를 사고 개찰구를 통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티켓이 마트 영수증 처럼 생겼는데, 바코드부분을 개찰구에 인식시켜야 문이 열리는 구조다. 그리고 온통 러시아어라 플랫폼 번호와 좌석 번호도 알 수 없었다. 근처 다른 사람에게 몸짓으로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플랫폼 번호와 출발하는 열차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좌석은 별도로 지정되어 있지 않았다.

밤 10시 40분. 스케줄을 보니, 오브닌스크로 가는 마지막 열차 였다. 그때까지 변변히 저녁도 먹지 못한 터라, 빵과 우유를 샀다. 옷도 못 갈아입고 바로 온 터라, 반팔에 반바지.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서 비가 조금씩 내리자, 쌀쌀해졌다. 피곤함과 함께 과연 제대로 거주 등록증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열차가 도착하고 자리에 앉았다.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설사 내릴 곳을 지나칠까. 휴대폰의 GPS 를 켜 두었다.

자정이 넘어 오브닌스크에 도착했다. 어제 봤던 기차역을 몇 시간만에 다시 보다니. 역에서 내리자 젊은이들 몇명이서 높은 담을 넘어 밖으로 뛰어 내렸다. 왜그런가 봤더니, 무임승차를 한 것이다. 밖으로 나가기위해서는 개찰구를 통과해야 하는데, 역시 티켓의 바코드를 이용해야 한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어두워진 길을 GPS 를 따라 숙소로 향했다.

숙소 현관이 잠겨 있어, 문을 두드려 들어갔다. 직원이 내 얘기를 들었는지, 웃으며 반긴다. 이미 모스크바로 돌아갈 수는 없는 시간.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묵고 내일 받아 가는 걸로.

<나중에 이곳을 다시 오게될 줄은 몰랐다>





[로그 정보]

달린 거리 : 91.564 km
누적 거리 : 26713.14 km

[고도 정보]

[지도 정보]

likewind, 2025/11/04 02:47, 2025/11/04 02:50

대사관이나 숙소 주인 모두 축구경기가 열리는 동안의 외국인 거주 등록증 조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못했다고 생각한다. 대사관에서는 해당 지역에 대해서만 매일 거주등록을 해야 한다고 했고(나중에 이외 다른 지역이 있을 수 있다고 말을 바꾸긴 했다), 숙소 주인은 러시아 전지역에서 매일 거주등록을 해야 한다고 했다. 대체 누구 말이 맞는건지?

기억을 떠올려보면, 외국인 거주등록을 해야하는 국가들(중국, 우즈베키스탄, 러시아)의 경우, 대도시에 있는 숙소들을 제외하면 현지인(숙소 주인)들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생각해보면, 작은 마을의 숙소에 외국인이 갈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이런 숙소에 갈 때는 오히려 내가 먼저 거주 등록증을 달라고 요구했고, 그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법이 있는 국가들은 자전거 여행자가 다니기에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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